『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충북동학농민혁명사
김양식 저
도서출판 직지
ISBN 978-89-89011-69-9 93900
값 10,000원
∣책을 펴내며∣
이 책은 충북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 이야기이다. 굳이 역사 이야기라 한 것은 철저히 역사 사실에 토대를 두면서도 일반인이 ‘쉽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필자의 역사적 상상력과 진솔한 감정을 이입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충북에서 시작해 충북에서 끝났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전라도와 전봉준만을 중심에 놓고 보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충북지역을 중심으로 접근할 경우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동학은 꺼져가던 불씨를 1880년대에 충북 땅에서 지핀 뒤 전라도를 비롯한 조선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사람이 하늘이고 하늘이 사람이라 외친 동학은 당시 어지럽고 사회모순이 가득찬 시대상황에서 한 줄기 빛이었고, 급기야 갑오년 그해 우리 역사의 근대 여명을 밝혀준 동학농민혁명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동학농민혁명 내내 충북지역은 혁명의 중심지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로 활동한 출중한 인물 상당수도 충북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충북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펴내는 것도 소외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충북지역은 역사적으로 정체되거나, 소극적이거나, 잘못된 현실을 외면한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과 평화’가 교차되는 가운데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상생의 공동체를 꿈꾼 곳이었다. 그것은 충북 땅 곳곳에 세워져 있는 많은 산성과 다양한 비석들, 그리고 천 년의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미륵불들, 외세에 대한 저항과 반란의 역사에서 알 수 있다.
충북 땅에서 꺼져가던 동학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시작과 끝을 알리는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갑오년 농민들의 분노는 왕조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근대사회를 여는 ‘개벽의 역사’를 잉태하고 분만하였다. 동학농민군이 흘린 피는 바로 분만의 고통이요, 새 역사를 낳는 피흘림이었다. 그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은 꺼지지 않는 영원한 역사의 등불이 되어 오늘의 현실을 밝히고 있다.
동학농민군이 꿈꾼 새 세상은 서로 돕는 상생의 대동사회,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나라, 정의로운 사회였다. 이 책에서 들려주고 싶었던 것도 ‘사람이 하늘’이라고 외친 동학농민군의 간절한 목소리와 처절한 몸짓이었다.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동학농민군들의 희망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실천해야 할 현재 진행형이자 ‘오래된 미래 가치’이다. 이 책도 그런 오래된 미래의 꿈을 이어나가는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2004년에 필자가 충북학연구소에서 출간했던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새롭게 고쳐 쓰고 부록을 보완하여 충북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체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소외된 충북지역을 재성찰하고 충북지역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뜻에서 새롭게 펴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이 ‘꼭 읽어야 할 충북인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2011년 4월
충북학 연구실에서 장보
■차례
책을 펴내며 … 5
1. 다시 또 파랑새를 찾아… 11
2. 혁명전야
1) 누구를 위한 세상이던가… 16
2) 폭발하는 농민들의 분노… 27
3) 길 떠난 농민 화적이 되다… 31
4) 들불처럼 번지는 동학… 40
5) 아! 장내리… 53
3. 혁명의 깃발은 올라가고
1) 전라도 무장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64
2) 전라도로 남하하는 충북 동학농민들… 69
3) 전주성을 점령하다… 77
4. 노비문서를 불사르라
1) 집강소가 설치된 전라도… 84
2) 다시 일어서는 충북 동학농민들… 90
3) 문서를 불사르고 무덤을 파헤치고…… 98
4) 전운이 감도는 갑오년 추석… 104
5. 피로 물드는 충북의 산하
1) 동학농민군 연합, 서울로의 총진군… 107
2) 청주와 충주를 점령하라… 113
3) 밀려오는 일본군과 정부군… 122
4) 불타는 보은 장내리… 125
5) 공주 혈전… 133
6) 전장터로 변한 충북의 산하… 138
7) 꺼져가던 불꽃 마지막 타오른 보은 북실전투… 144
6. 동학농민혁명, 꺼지지 않는 역사의 등불
1)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성격… 151
2) 면면히 흐르는 동학농민혁명 이념… 154
3)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 160
글을 마치며… 171
부록
1. 문답으로 풀어본 동학농민혁명과 충북… 174
2. 충북 동학농민군 열전… 193
3. 충북동학농민혁명 유적지… 211
4. 충북동학농민혁명사 연표… 215
참고문헌
■본문
1. 다시 또 파랑새를 찾아
역사는 끝나지 않은 과거이다.
역사가 과거로 끝난다면, 그 역사는 죽은 역사요 죽은 자를 위한 옛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살아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오래된 미래 가치를 찾아 실천에 옮겨야만 한다. 그것이 곧 실천적 역사학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이미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을 하지 않고 생명의 호흡을 하듯,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와의 대화이기에 호흡을 멈추고 흐르는 시간에 집중하고 주변에 있는 유물과 유적을 들여다 보았을 때,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요동치는 옛 사람들의 목소리와 몸짓을 발견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목소리와 몸짓은 파랑새 노래를 따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파랑새 노래를 부른 기억이 난다. 청포장수와 녹두꽃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찡한 호기심에 사로잡힌 기억도 난다.
원래 이 노래가 불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이다. 아이들이 들녘 곡식을 쪼아먹는 새를 쫓으면서 부른 동요이다.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1백여 년이 흐른 갑오년 그해, 동학농민군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혁명의 깃발을 펄럭이었다. 동학농민군들이 이 노래를 부른 것은 새를 쫓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역사 저편으로 내쫓고 침략세력을 이 땅 밖으로 내몰기 위함이었다.
갑오년 그해 이 노랫소리는 충북 땅에서도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아니, 충북 보은 장내리에서 불리기 시작해 보은 북실에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해 충북은 어느 곳이나 핏자국으로 얼룩졌고 수천 명의 사람이 녹두꽃 되어 이 겨레 이 역사를 살리는 한 줌의 흙이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에서 살아 있는 우리가 역사의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에 말을 걸지 않으니, 갑오년 처절하였던 역사와의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다시 또 녹두꽃이 핀 이유와 그 꽃이 떨어지면 안 되는 소망을 찾아 숨을 죽이고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자 한다.
20세기 ‘혁명의 시대’가 끝난 지금, 21세기에 동학농민혁명을 현실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아직도 동학농민군들의 꿈과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랐던 세상은 사람이 하늘인 세상, 모든 것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였다.
특히 충북지역은 꺼져가던 동학의 불씨가 되살아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전라도 남쪽에서 불어온 농민혁명의 바람을 만나 수많은 농민들이 죽어간 곳이기도 하다. 동학농민군은 죽었지만, 사람이 하늘인 세상,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던 그들의 염원은 파랑새 노래에 실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람이 하늘인 세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때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의 진리이자 역사적 경험에서 배운 오래된 미래 가치이기도 하다. 그것이 역사가 들려주는 진리이고 경험적 가치라면, 가치 실현은 끝나지 않은 지속 가능한 실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가치와 과제를 찾기 위해서는 역사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사람이 하늘인 세상이 어떠한 세상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1880년대에 들불처럼 동학이 번지고 급기야 농민혁명으로 발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수운 최제우에 의해 1860년에 창시된 동학의 근본 철학과 사상은 기본적으로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있다. 최제우는 시천주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말하고 있다.
‘시(侍)’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는 것이요, ‘주(主)’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같이 섬기는 것이다.*
시는 곧 내 안에 있는 신령을 섬기어 밖으로 우주의 기운과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신령은 곧 한울님으로, 그런 한울님은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존재이다. 그러니 곧 나=너=우리=사람=만물=한울님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제우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사람이 바로 한울이요, 한울이 바로 사람이다. 사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사람이 없느니라.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한울에 있다. 한울은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있느리라. 그러므로 마음이 곧 한울이요, 한울이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한울이 없고 한울 밖에 마음이 없느리라.**
사람이 곧 한울인데, 그 마음이 곧 한울이고 한울이 마음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시천주 사상은 해월 최시형에 의해 ‘사람이 곧 하늘(人是天)’인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사람이 곧 하늘이니, 사람 섬기길 하늘 같이 하라’는 명제를 낳았을 뿐 아니라, 보다 실천성을 강조하고 있다. 해월 최시형은 “선생님은 한울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기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부인이나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한울님의 말씀으로 여기겠다.”며 모든 사람들을 한울님처럼 존중하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모든 인간의 위치를 한울님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따라서 동학의 시천주 사상은 전통적인 남존여비와 신분귀천을 부정한다. 또한 인간 존엄과 평등사상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전통적인 인간관을 해체하고 근대적인 인간형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하며, 그 과정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전망하게 한다.
당시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농민 대중들의 열망은 대단하였다. 1880년대에 활동하던 어느 활빈당은 의(義)를 들어 부자를 털어 가난한 자를 돕겠다고 선언하였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본부를 ‘제중의소(濟衆義所)’라 하였다. 제중의소란 ‘민중을 구제하는 의로운 곳’이란 뜻이다. 이는 곧 농민 대중을 위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시 억압받던 농민들은 그것을 알았다. 농민들은 동학 속에서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알아차리고, 동학농민군 깃발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재발견하고 처절한 몸짓을 펼쳤던 것이다. 그 몸짓은 비록 죽음으로 끝났지만, 영원히 지지 않는 녹두꽃이 되어 역사 속에 피어있기에 다시 또 파랑새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 『동경대전』, 논학문.
** 『동경대전』, 천지인·귀신·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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